인기인가 북한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정치인으로서 문재인의 능력과 업적은 변변치가 않다.

사시 합격하고 변호사로서 승승장구했던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일신의 영달일뿐, 공적 지위인 대통령의 과거로서는 의미가 없다. 변호사 시절부터 공익 실현에 관심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그의 선의를 의심케 하는 뒷말과 증언도 있고, 무엇보다 그는 인권이나 노동사건 변호를 맡아 영향력 있는 판결을 받아낸 적이 없다.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문재인의 정치 입문은 스무스하게 이루어졌다. 대통령이었던 친구 덕분에 남들이 정치에 발을 들이며 겪는 숱한 시행착오와 좌절을 피할 수 있었다. 선출직으로 첫발을 디딜 수밖에 없는 다른 정치인들처럼 평생 모은 전재산을 선거운동에 쏟아붓는 모험을 할 필요도 없었고, 어느 계파의 어느 라인을 타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문재인의 국회의원 뱃지는 노무현이 달아준 것이다.

정치판에서 그런 사례가 드문 것은 아니므로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별다른 업적이 없다. 오히려 각종 지표들은 문재인의 의정활동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무능력했고 게을렀다. 그렇다고 당내 정치에 능했던 것도 아니다.

사실 정치인은 평소에 아무리 멍청하게 지내더라도 선거 때에만 전략적 안목을 갖추거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 문재인 못지 않게 이룬 것 없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그런 안목이나 기질도 없다.

문재인을 국회의원으로 만든 게 노무현이라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건 박근혜이다. 꼭 문재인이 아니었더라도 그 당시에 그 정도의 인지도에 그 정도의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능력과 업적에 비해 지지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지도자는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지금의 문재인이 그렇다. 그래서 지지율의 변동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사고친 대통령이 강제로 끌어내려지는 걸 제일 가까이에서 목격했으므로,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것이 국정운영과 정책수립 방향을 결정하는 1순위 고려요소가 된다. 중우정치와 포퓰리즘이 창궐하지 않을 수 없다.

비트코인 거래소 폐쇄한다고 했다가 아니라며 말을 바꾸고, 유치원 영어교육을 전면금지했다가 재허용한 것만 봐도 위의 예상이 틀림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정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가상화폐로 인한 투기 광풍과 영어 조기교육 과열 따위의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의 객관적 실효성 유무도 아니다. 단지 그 문제와 해결책에 관한 국민의 여론만이 염려의 대상이다.

지도자라면 남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걸 밀어부치고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알맹이가 없고 포장만 요란한 자일수록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소통", "직접 민주주의" 따위의 좋은 말로 포장해서 대중의 눈치를 살핀다.

이런 지도자들의 말로는 정해져있다. 소통과 직접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행해지는 대중의 폭력 앞에 자유와 평등에 관한 지표의 총체는 점점 감소할 것이다. 그토록 놓치기 싫었던 대중의 지지는 결국 잃게 될 것이다. 탄핵당할 일은 없겠지만 이와 같은 점진적인 지지율 하락은 오히려 지도자 개인에 대한 불신임이 아니라 정권과 여당 전체에 대한 불신임이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일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결말이 정말로 궁금한 것은 평창 관련 남북협상에 관한 정부의 입장이다. 북한이 평창에 개입해서 얻는 부당이득에 대하여 국민의 여론이 극도로 부정적이고, 심지어 달빛 어쩌구 하는 댓글조작단들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아마도 이런 정보는 청와대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전달되었을 것이다.

과연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정부는 지지율을 위해서 입장을 번복할까? 우리 선수들 뒷통수 치는 단일팀 구성 계획을 백지화하고, 선수단 이외에 체제선전이 의심되는 예술단의 방문과 공연을 금지하며, 한반도기 대신 태극기를 사용한다는 내용을 불가역적 조건으로 하여 공문을 날릴 수 있을까?

그동안 정부는 이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면 반드시 진화작업을 했다. 특히 자기들 지지층인 젊은 애들이 의외로 부정적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뭔가 입장 변화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또 막상 판을 깨자니 평창 구상이니 운전자론이니 하며 전에 거창하게 떠벌여놨던 것이 있어서 망설여질 것이다.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두고 볼 일이다. 인기인가, 북한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문재인에게는 둘 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탁 치니까 억단위로 떨어졌다

법무부장관이 비트코인 규제법안 만들겠다며 부처긴 이의 없다고까지 발표했는데 사실은 그게 청와대 의견은 아니고 확정된 바는 없다?

말 같지도 않은 이 변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다.

첫째는 변명의 내용 그 자체이다. 청와대 오더도 없이 몇 백만 명 돈줄이 왔다갔다 하는 입법 예고를 혼자 해버린다는 건 장관이 쳐돌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처간 소통과정에서의 오해? 그런 개념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꼬리자르기용 관용구일 뿐이다. 지시가 없었다면 절대로 장관은 저런 발언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저 변명은 구라이다.

둘째는 구라를 치는 속도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기영합에 대한 정부의 무서울 정도의 집착을 알 수 있다. 청와대는 반발이 예상 외로 거세니 곧바로 반응을 감지하고 7시간만에 구라를 쳤다. 저토록 신속한 반응이 투자자들 손해를 보전해 주기 위해서였을 리는 없다. 단지 어린애처럼, 욕을 먹는 게 무서워서 말을 바꾼 것일 뿐이다.

신속한 구라로 한시라도 빨리 미움받는 것을 멈추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 그 구라가 가져올 파급효에 대한 예상 따위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발 물러서고 나면 이제 정부는 도대체 무슨 수로 과열된 가상화폐 투자를 규제할 것인가? 정부가 몽둥이 앞의 개새끼마냥 투자자들 눈치나 보며 벌벌 떨고 있다는 게 다 까발려진 이 상황에서? 정말 아마추어리즘의 극치이다.

셋째는 저따위 수준의 구라가 먹힐 거라고 생각한 오만함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변명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에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그 내용이 어불성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근저의 태도 때문이다. 개돼지들이니까 개소리라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돼지로 여기지 않는 이상 저런 수준의 구라는 칠 수 없다.

이 와중에 총리가 일반인 페이스북 친구들하고 영화 1987을 보러 갔다고 한다. 벌써 두 번째 관람이라고 한다. 영화에는 대립하는 "민중"과 "정부"가 등장한다. 문재인의 386들이 영화를 보며 감정이입을 했을 쪽은 분명 "민중"이었을 것이다. 자기들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다 이루었다는 착각 속에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를 개돼지로 보며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실제로 그들이 감정이입을 해야 할 쪽은 영화 속의 "정부"이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이 정부가 그런 반성적 고려를 하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는 사실을. 그러기 의해서는 과거의 영광과 향수에서 깨어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운동권과 386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몰라서 문재인처럼 안했을까

대통령이 사고 날 때마다 만사 제쳐두고 내려가서 위로하고 좋은 말 해주면 참 인간적으로 보이겠지. 그런데 왜 역대 대통령들은 그렇게 안 했을까. 사람이 먼저라는 신념이 없어서였을까? 페스카마호의 선상반란자들을 변호할 만큼 훌륭한 박애정신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렇게 해봤자 사태 수습에 실질적인 도움도 안 되고, 행정력 낭비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선례로 작용을 해서 후일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안 했을 뿐이다.

지도자가 인기에 연연해서 가볍게 행동하면 결국에는 자기 발목을 잡게 마련이다. 문재인은 인명사고가 터질 때마다 현장에 찾아갈 셈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때 가서 형평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무마시킬 것인가?

문재인은 지난 낚시배 전복 사건 때 국가의 무한책임을 주장하면서 세월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총리나 장관이 해야 될 일인데도 굳이 직접 나서서 유족들의 울분을 다 받아줬다. 이처럼 불가항력적인 재해 앞에 감성팔이 이상의 의미가 없는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가 계속되면 국민들은 그때마다 공무원에게 악쓰고 소리지르며 대통령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걸 미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 그동안 풀어놓은 좋은 말들과 약속 때문이라도 대통령은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성의를 보여야 한다. 그 결과 세월호 특별법과 같이 피해자에게 한풀이쇼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실로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대책이 나오는 것이다.

문재인처럼 대중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가볍게 나서는 건 결국 감성팔이와 인기영합을 위해서 법치주의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역대 대통령이라고 따듯한 마음이 없어서, 냉혹한 독재자라서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중국 서민식당에서 밥먹는 대통령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왕이 아니라 이런 친근한 지도자를 원했다" 라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그게 다 옛날 왕들이 써먹었던 수법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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