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을 걸기로 결심한 우디스님께



사람은 흥분하거나 당황하면 자기도 모르게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 법이지요. 이건 지적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 인격적 성숙도나 도덕성과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방어의 본능일 뿐입니다. 똑똑한 사람, 높으신 분, 사리분별 할줄 아는 노인, 성인군자도 이런 실수를 합니다. 굳이 이런 실수를 방지할 만한 능력을 찾는다면 아마 승부사 기질 정도일 것입니다. 승부사 기질이 있다면 "할복을 하겠다" 내지 "손목을 걸겠다" 따위의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흥분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그것이 언젠가는 자기 발목을 붙잡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 라는 대사야말로 승부사 기질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승부사일 수는 없고 사람은 실수를 하는 법이니, 실수로 내맽은 말 한마디를 가지고 그 사람을 재단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그릇을 결정짓는 것은 실수로 내뱉은 말일지라도 어떻게든 그 말에 책임을 지고 수습하려는 자세를 보이는지 여부라 할 것입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을 했을 때, 특히 그 내용이 할복을 한다거나 손목을 건다는 등(이른바 "조건부 자해행위 약속")과 같이 극단적이며 사회질서에도 반하는 경우, 가장 훌륭한 대응책은 무엇일까요?

사나이답게 실제로 배를 가르거나 요골(橈骨)을 끊어버리는 것도 방법일 테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중책(中策)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상책(上策)은 자신의 실수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비현실적인 약속을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염치 없지만 일구이언을 이해해달라는 취지의 호소가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당장은 낯이 뜨겁겠으나 그것이 자신의 업보를 가장 빨리 청산할 수 있는 길이며 자기가 싼 똥을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용기있는 행위라고도 할 만 합니다.

반면에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면서 면책을 주장하거나 논지를 흐리는 것, 또는 구질구질한 말장난(옷걸이에 손목 걸기 등)으로써 최초의 말실수를 희화(戲化)하는것 따위는 하책(下策)입니다. 상중하의 순위는 비교적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하책에 호소하는데, 이들은 대개 능력에 비해 자존심이 센 하찮은 사람들입니다.

하책을 취하는 순간 최초의 말실수를 능가하는 새로운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이므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솔직히 여기까지는 인간의 더러운 본성 중 일부라고 이해하고 어느정도의 연민을 품을 수있습니다.

그야말로 구제불능인 것은, 자신의 실수는 변변한 반성과 사과도 없이 넘어가 버리면서 자기와 똑같은 실수를 범한 사람을 조롱하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약속을 이행할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간사하게 히죽거리면서 "그래서 언제 할복할 거냐"는 한마디를 길게 늘이고 기름을 칠하여 써놓습니다.

저는 말실수를 하고 변명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초한 일일지라도 어쨌든 궁한 처지였으니까요. 옷걸이에 손목을 건다는 드립을 치면서 본인도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은 비겁한 변명에 호소했으면서, 똑같은 말실수를 한 누군가(특히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에게 마치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조롱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순임과 동시에 도덕적으로도 용인되기 어려운 인간성의 타락이라 할 것입니다. 솔직히 정말 졸렬하고 병신같아요.

손모가지 자르는 것 정도는 할복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니, 우디스님이 최경환 의원에게 한 것과 같은 구구절절한 조언은 불필요할 것으로 믿습니다.




페미니즘이 정신병인 이유 2

"MTF 트랜스젠더들은 사회가 그들을 타자화함으로써 규정한 여성의 특성을 답습할 뿐더러 이를 통해 여성성을 재생산한다."

라고 부르짖는 분에게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답하기가 아래와 같은데,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레퍼런스가 없으니까 (있을 리가 없지ㅋ) 저런 동영상 캡쳐라도 올려봐야겠고

지가 생각해도 좀 아닌 거 같으니까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면서 속으로는 필사적으로 논리를 쥐어짜내고 있는 거겠지

공부 못하는 애들이 성적이 안 나오는 건 사실 지능이 딸리는 것보다도 메타 인지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스스로 안다는 걸 알고 모른다는 걸 아는 능력을 말한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지가 안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시험기간에 이미 다 아는 부분을 읽고 또 읽는다. 반대로 모르는 부분은 짜증나니까 읽지 않는다. 모른다는 걸 모르니까 그걸 알았을 때의 편익을 자각하지 못하고 모름을 앎으로 바꾸는 과정의 짜증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타인과 상호작용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능력이 딸리는 애들일수록 자신의 주장이 중대하고도 명백한 헛소리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논쟁 상대방의 이해력의 부족을 탓한다.

저 짤방을 근거랍시고 가져오면서 본인도 아마 좀 부끄러웠을 것이다. 만약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없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지능이나 메타 인지능력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부조화 내지 확증편향이라는 정신질환의 문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전자이기를 바라는데, 딱히 불쌍해서라기 보다는 내가 전에 쓴 글이 무의미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를 앉혀놓고 이율배반이니 나발이니 비판을 하는 것만큼 공허한 일이 또 있겠는가.

아무튼 저 짤이 맨 위의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짤에 나온 사람은 MTF 트랜스젠더를 대표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리수도 그렇고 저 사람도 그렇고, 오히려 연예인 혹은 방송인이라는 점에서 일반성과 대표성은 더욱 미약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만 봐도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페미니즘은 정신병임이 분명하다.

아, 페미니즘이 정신병이라는 근거요? 저 김뿌우라는 사람만 그럴 수도 있는 거라구요? 안 그런 페미도 있다구요? 일부만 보고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구요?

이보세요, 저 포스팅 캡쳐가 "근거"거든요.

나도 귀찮으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하지만 못 알아들어도 너무 절망하지 마시라. 당신은 그냥 정신병이 있을 뿐이다. 뒤지는 편이 세상을 위해 낫다며 자책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이 정신병인 이유

하리수는 비여성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이 만들어낸 여성성의 기준을 거부한다. 그러나 결코 여성해방을 (적어도 진심으로는)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여성성에 대한 자의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거기에 부합하지 않으면 여성이 아니라는 선언을 한다. 페미니스트가 아닌 나조차도 스스로 여성임을 선언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권한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처럼 황당한 이율배반적 오류를 개인이 아닌 집단 단위로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물이 이른바 "부역자" 논리이다.

"부역자" 논리는 언뜻 보면 모든 이념체계에 존재하는 정당한 자기방어적 항변으로 보일 수도 있다. 관용을 부르짖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적을 철저히 깨부수어 재기불능으로 만드는 것(대표적으로 위헌정당해산과 탄핵)이 허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부역자"들이 정말로 페미니즘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페미니스트들이 이에 맞서 싸우는 것은 정당하며 나아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정립된 면역체계의 명령에 따라 적들을 물어뜯는 백혈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백혈구들은 극성분자들로서 흔히 꼴페미로 불리겠지만, 그들의 행동 자체에는 적어도 내재적 모순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역자"들이 페미니즘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 사실일 때에만 성립하는 논리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부역자"들이 페미니즘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고, 따라서 이들에 대한 공격도 정당한 면역체계의 작동이 아니다. "부역자"라는 개념은 이념의 명령에 의해서 논리필연적으로 도출된 것이 아니고, 단지 분노와 열등감을 표출하는 과정이서 자의적으로 설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자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는 여자들을 부역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탄압한다. 그러나 남자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는, 그래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여자들은 페미니즘의 적이 아니다. 자본가들이 민주주의의 적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부역자 논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병균을 물어뜯는 백혈구가 아니라 그냥 술에 취해 신세한탄을 하면서 길가던 행인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유아적 범죄자들에 불과하다. 

더 고약한 것은 이들의 성전환 여성들에 대한 시선이다. 


"사실 길게 얘기해봐야 이해하기도 힘들고 나도 쓰기 힘들다 ㅇㅅㅇ)... 그냥 간단하게 하리수가 여성으로 불려선 안되는 이유는 이거임. 하리수는 단 한 번도 여성으로서 존재 한 적이 없거든."

"아니, 애초에 트랜스젠더는 다른 성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연기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함. 남성이 관찰한 여성의 행동,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사분사분히 굴거나 손 끝에 힘을 주고 사뿐사뿐 걷고 골반을 유독 강조하는 걸음걸이들을 흉내내는 것이 여성다운 여성의 표상이 되는가? 그렇다면 결국 트랜스젠더는 성 역할을 고착시키며 여성을 타자화된 하나의 대상으로 다시금 억압하는, 여성의 억압자인 남성의 부역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남자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는 여자들의 여성성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동을 모방하여 남성성을 가림으로써 간접적으로 여성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성전환 여성들까지 부역자로 낙인찍는다. 이것은 거의 막장 중에 막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인격 살인이며, 정신병에 호소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내뱉기 어려운 말이다. 

페미니스트라는 자들이, 평생동안 여성성을 갈망해온 사람에게 "단 한 번도 여성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라는 말 따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왜일까? 엄청나게 폭력적인 이러한 문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건 여성해방 따위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의 분노와 열등감을 표출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도구로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을 이용할 뿐이다. 그것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다 보니 수단이 목적을 왜곡하듯 페미니즘은 이제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불구의 이념이 되어버렸다. 

성전환 여성이 스스로 여성이라고 하면 그는 여성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페미니스트의 명함을 달고서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것인가? "아, 자네는 혁명사업을 해보지 않아서 몰라. 투쟁이라는 것은 정치야." 따위의 현실론을 주장하려는 것인가? 현실론에 호소하려면 먼저 그것이 자신의 신념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해야 하는데, 인용한 글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성전환 여성의 여성성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의 신념에 부합한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어이가 없을 뿐이다. 

저들이 그렇게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그 "연대"라는 개념도 사실은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페미니스트의 연대 가능성은 그 기준은 너무나 극적으로 바뀌기에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데, 어떤 때에는 사회적 정책을 공유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식으로 준엄하게 타협을 거부하다가도, 표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앙금을 눈녹듯 날려버리고 손을 잡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창녀와 남창의 옷을 나누어 입고 길거리에서 음란한 행진을 함께할 수만 있다면 모두가 하나라며 양산박 뺨따귀 후리는 사해형제주의를 내비치다가도, 어떤 때에는 창녀를 계몽 불가능한 개돼지로 취급하고 성전환 여성들의 적대적 눈빛을 두고 수군거리며 상종 못할 껍데기들이라고 단정짓는다. 아마도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인정하는 연대 가능성의 교집합은 "이성에게 (심지어 본인보다) 인기가 없어서 (본인보다) 젠더 권력이 낮지만, 그럼에도 어느정도 깨어있어서 분노의 이념에 선동되기 쉬운" 자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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